[이강석 칼럼] 행복한 상상

이강석 | 기사입력 2023/06/28 [10:06]

[이강석 칼럼] 행복한 상상

이강석 | 입력 : 2023/06/28 [10:06]

▲ 이강석 (전)남양주시부시장     ©수원화성신문

 

심장을 이식받은 이가 심장을 기증한 사람의 성격 일부를 닮아 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심장이식을 받은 이가 평소 관심이 적었던 분야에 대해 새로운 취미나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어떤 분야에 대한 기능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기증받은 분의 심장에서 어떤 능력이나 취미, 지식, 전문성을 전해 받았다고 가정해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의 몸은 그냥 뇌의 명령에 순응하는 기계적인 근육과 뼈와 관절이라는 생각을 바꿔야 하는가 봅니다. 그간 우리의 생각은 오로지 머리의 명령으로만 몸이 움직인다고 생각해 왔는데 뇌가 아닌 심장이식을 받은 이후 새로운 생각이나 취미가 느껴진다고 하니 신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근육이나 허리 관절 등에서 지금 많이 불편하니 몸을 움직이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하고 그래서 근육이 움직이고 관절을 굴신하여 조금 편안한 자세를 취하도록 하는 일은 종합적으로 뇌가 판단하여 명령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조직에서 위임받은 범위 내에서 움직임을 알아서 정한다고 가정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일상에서 뇌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움직이는 동작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한 번도 심장에게 '박동하라!'는 명령을 하거나 심장이 뛰기를 바란 바가 없습니다. 오히려 놀라서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므로 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숨을 몰아쉰 바는 있습니다. 급하게 숨을 쉬는 것도 스스로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그리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전에 없던 새로운 능력이나 취향을 느끼는 장기 이식자는 그것이 새로 들어온 장기의 전  주인의 의식이라는 점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고 이를 받아들이면서 상호 간에 융합적인 기능이 가능해진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그러하다면 식물인간이 된 가족의 장기를 다른 이에게 기증하고 장례를 치른 가족, 부모의 입장에서는 그가 사망했지만 그 일부의 의식과 생각이 다른 이의 장기가 되어 다른 사람의 몸을 빌리고 다른 이의 몸속에 자리 잡고 살아간다는 상상을 통해 이별의 아픔을 덜어 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를 조금 더 폭넓게 인정한다면 인간은 지구상에서 죽지 않고 영생하고 있다는 철학적 접근도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인간은 선사시대, 역사시대, 근대, 현재로 오면서 자신의 고향을 좋아하고, '여우가 타향에서 죽을 때 고향으로 머리를 둔다'라는 수구초심(首丘初心)의 마음으로 고향을 지키며 살아왔습니다. 조상의 묘를 관리하고 근처에서 농사를 지어 채소, 곡식을 먹고 그 부산물로 키운 가축의 고기를 먹었습니다. 토양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과거의 조상과 후손들이 소통하고 있다는 논리가 가능하겠습니다.

 

그래서 채소조차 고향 인근의 것을 먹으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씀이 일응 논리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간 삶의 터전인 토지는 영원히 이어지는 생명줄이며 삶의 통로이고 DNA의 연결고리라는 가설을 제시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주변에 함께하는 수목, 동물, 식재료 등 모든 것이 긴 세월 속에서 돌이켜보면 서로 연결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른바 정기를 이어간다는 것이 그냥 정신적, 멘탈로서의 의식뿐 아니라 실제로 분자, 전자, DNA 등 여러 가지 관계성에 참여하는 물체가 이어진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동네 하천의 물 한 바가지 속에는 수천 년 역사의 DNA가 한가득'이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유명 인사 중 아빠가 딸을 안고 있는 사진을 보면 얼굴 안에 닮음이 많이 보입니다. 그냥 아빠 얼굴에 머리카락을 길게 기른 딸의 모습도 보입니다. 당대의 부녀간에도 닮은 꼴이 나오고 윗대로 올라가도 같은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고향마을을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조상 대대로 살았음을 자랑하는 9대손의 이야기는 본인이 하는 말이 아니라 250년 전 9대 할아버지의 말씀일 수 있습니다. 지금 후손, 종손의 몸속에는 9대조 할아버지의 DNA가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수많은 조상들의 합작품인 셈입니다.

 

그래서 조상의 음덕(蔭德)으로 후손이 잘되고 조상을 잘 모시지 못하여 자손들의 앞길이 막힌다는 말을 합니다. 점쟁이들이 복채를 늘리는 기술입니다. 그 자손들, 특히 며느리와 손녀들이 열심히 복채를 내고 점쟁이의 이야기 중 공통점을 찾아내려 애를 씁니다. 콩나물 1,000원어치를 사면서 깍아달라 하지만 복채 5만원은 선뜻 쾌척하는 DNA 역시 12대조 할머니로부터 이어져온 전통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생각은 지금 자신의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는 줄 알겠지만, 우주 속 큰 질서 속에서 이미 수백 년 전에 프로그램으로 선 제작된 드라마 시나리오에 따라서 배우, 꼭두각시처럼 움직이고 있다는 가정도 해 봅니다. 우리의 생각은 오로지 자신의 것이 아니라 우주를 움직이는 절대자의 예정된 프로그램으로 가동 중이라는 상상을 해보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심장이 뛰는 이유, 폐가 숨을 쉬는 이유, 눈을 깜빡하는 원인을 서서히 밝혀나가는 시대가 열리는 것인가 하는 새로운 상상을 해 보는 것입니다.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기술이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의 안경에 몰래 장착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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