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7세기 근대 인물들의 초상화를 보면 대부분 곱슬곱슬하고 긴 가발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이 당시 돌림병인 페스트가 유행하였는데 사람들은 자주 씻으면 피부가 얇아져서 전염이 더욱 확산이 될 것으로 생각한 나머지 목욕을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몸에서 나는 지독한 체취는 향수로 가리고 이와 벼룩이 생기지 않게 머리카락을 다 밀어버린 후 가발을 썼다. 루이 14세 역시 각종 질환으로 거의 대머리가 되었기에 가발에 무척 집착했으며, 그 당시 사람들도 최고 권력자의 비위를 맞추기 위하거나 권력과 위세를 자랑하기 위해 따라 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궁정 음악가들은 귀족 대접을 받았는데, 바로크 시대 대표적인 음악가는 헨델(Georg Friedrich Händel, 1685~1759)과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이다. 이들은 같은 해에 독일에서 태어난 작곡가로, 바흐는 고국에서만 활동하면서 자녀를 여럿이나 낳아 생계유지를 위해 싼 가발만 썼으며, 이탈리아·영국 등 유럽 각국을 누비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쌓은 헨델은 실크로 된 명품 가발만 썼다고 한다.
헨델(좌), 모차르트(중), 베토벤(우) 초상화 : 17~18세기 유럽의 상류층 남성들 사이에서는 가발이 유행했다. 초기에는 회색과 갈색 등 원래 머리카락 색깔이었지만, 후에는 더욱 눈에 띄도록 흰 가루를 입혀서 새하얗게 만들었다. 이 시대에는 가발이 신분 차이를 보여주는 수단이었다. 음악가들도 궁정을 드나들며 귀족들과 가까이 지냈기 때문에 가발을 썼는데, 헨델이 지휘를 할 때면 커다란 흰 가발이 흔들흔들했다고 한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와 하이든(Franz Joseph Haydn, 1732~1809)은 고전파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루이 15세가 심플한 가발을 선호하여 이들도 전시대보다 훨씬 단정한 가발을 썼다. 남자의 가발은 권위와 지성을 상징한다고 생각되었던 흰색이 유행하였고 이를 퍼루크(peruke)라고 불렀다.
흰색을 내기 위해 주로 하얀 밀가루를 뿌리곤 했고, 부유한 귀족 집에서는 가발에 밀가루를 뿌리는 방을 따로 두었다. 여기서 오늘날 화장하는 공간을 뜻하는 '파우더룸'이 나왔다. 퍼 루크는 가격이 엄청 비싸서 평상시 쓰는 작은 가발도 보통 런던 시민의 일주일치 임금을 줘야 살 수 있었다. 모차르트 같은 음악가들은 주로 궁전이나 귀족 집안에서 주로 음악회가 열렸기에 퍼 루크는 필수였다. 이렇게 밀가루가 사용되니 일반 시민들은 빵조차 먹지 못했고 굶주림으로 죽어갔다.
계몽주의 사상가였던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은 전혀 가발을 쓰지 않았다. 그 배경에는 베토벤이 활동하던 시기에 프랑스 혁명(1789)이 있었다. 즉, 시민들은 식량난으로 굶어 죽는데 밀가루를 가발에 뿌린다는 것에 대해 민중들의 분노가 치솟은 것이었다. 가발을 쓰고 돌아다니는 귀족들이 성난 민중들의 보복 대상이 되자 귀족들은 가발을 벗기 시작하여 18세기 말에 가서 가발의 전성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다. <저작권자 ⓒ 수원화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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