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신 음악칼럼] 인공지능(AI)시대 클래식 음악의 역할

김명신 | 기사입력 2024/08/22 [07:53]

[김명신 음악칼럼] 인공지능(AI)시대 클래식 음악의 역할

김명신 | 입력 : 2024/08/22 [07:53]

▲ 김명신 수원시음악협회 회장 ©수원화성신문

 

“음악은 우주에 영혼을 부여하고 정신에 날개를 달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 그리고 모든 것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 플라톤 -

 

인공지능(AI) 기술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인간의 역할은 축소되고, AI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분야가 과연 있을지 의문일 정도의 시대가 도래했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최후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술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AI가 대중의 취향에 맞춰서 히트곡도 쓰는 시대가 되었고, 기업들의 광고 시장에서뿐만 아니라 시와 소설을 쓰며, 그림을 그려주는 AI와 음악을 작곡하는 AI는 이미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피아노도 로봇이 치면 더 빠른 템포로 정확하게 연주한다. 연주도 작곡도 한 사람의 정신세계와 경험이 농축돼서 나오는 건데, AI의 데이터나 프로그래밍은 진짜 같은 가짜만 만들어 낸다.

 

과거에도 알고리즘을 입력해서 50가지 이상의 컴퓨터 옵션을 믹스한 작곡가가 성공한 사례가 있었는데, 그러한 곡들은 퍼스낼러티가 느껴지지 않았다는 평을 받았다. 음악은 언어와 마찬가지로 사실 악보로 잡히지 않는 강약과 느낌을 얼마나 연주자가 잘 표현해 감동을 주는지가 관건이어서였다.

 

베토벤은 클래식 음악사상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9번 교향곡 ‘합창’을 끝으로 교향곡을 더 이상 작곡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3년 후 1827년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10번 교향곡이 미완성으로 발견되었다. 단편적인 스케치 단계로 250개의 음표, 40여 개의 프레이즈(음악적 문장)로 구성된 서너 마디의 선율. 연주 시간은 불과 11초 분량이다.

 

이러한 베토벤의 음악적 유산은 AI(인공지능)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베토벤(1770~1827)의 탄생 250주년인 2020년, 음악계와 과학계에서 ‘베토벤 교향곡 10번:AI 프로젝트’(Beethoven X: The AI Project)가 대대적인 협업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AI는 베토벤의 짧은 스케치로 약 20분 연주 분량의 스케르초와 론도 악장을 완성했다. 이 곡은 2021년 10월 9일 본 베토벤 오케스트라 연주로 베토벤의 고향인 독일 본에서 초연됐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역시 퇴근길 콘서트(5월 28, 30일) ‘과거와 미래의 교향곡:AI의 선율’을 통해 베토벤 10번 교향곡 AI 프로젝트 3악장을 들려줬다. 지휘를 맡은 데이비드 이 부지휘자는 “10번 교향곡은 베토벤 5번 교향곡의 카피라고 느껴질 만큼 흡사했다”고 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AI가 작곡한 베토벤 교향곡 10번에 의문을 가졌다. 작품이 도무지 베토벤답지 않다는 게 그 이유였다. 물론 AI가 완성한 교향곡 10번은 과거의 베토벤 작품들을 분석해 도출한 것이었다. AI는 잠도 자지 않고, 밥도 먹지 않으며 엄청난 수의 패턴을 만들었다. 마침내 AI가 완성한 베토벤 교향곡 10번은 어딘가 베토벤의 음악과 비슷하지만, 베토벤의 정신이 느껴지지 않은 음악이 되었다. AI가 완전히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 내진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다른 작곡가도 아닌 베토벤이기 때문에 더욱더 실망스러웠다고 한다. 베토벤은 매 순간 기존의 형식을 완전히 벗어나며 끝없이 변화해 나간 작곡가였기 때문이다.

 

음악은 예술가들의 감수성과 스토리가 담긴 고도로 복잡한 산출물이다. 베토벤은 귀가 들리지 않았을 때 느꼈던 절망, 자유를 향한 갈망, 외부와 단절된 그가 자신의 내면으로 향했던 순간들, 이 모든 게 베토벤 음악에서 읽어낼 수 있는 대표적인 스토리다. 우리는 음악 속에서 베토벤의 외침이 느껴지는 순간 위로받고, 인간이라는 존재가 이렇게 위대해질 수 있음에 전율한다. 인간 베토벤과 소통하며 음악 너머의 순간들을 느낀 것이다. 그때 바로 ‘감동’이라고 부르는 심리적 화학작용이 따라온다.

 

“사람들은 단지 베토벤의 음악에서만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베토벤이 특정 악상을 선택한 의지, 화성을 사용하는 방식의 창의성, 청력을 잃은 상태에서도 음악을 만들어 내는 불굴의 의지에서 큰 감동을 느낀다. AI가 아무리 뛰어난 작품을 만든다 해도 인간이 만든 예술 작품만큼 강력한 서사와 감동이 없어 큰 의미가 없다”라고 허명현 음악평론가는 말했다.

 

물론 AI가 만든 작품 안에서 인간의 감정을 찾을 수도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를 느낀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AI 역시 학습된 패턴을 통해 인간의 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 표현을 산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AI는 왜 슬픔을 느꼈고, 또 왜 이 기쁨을 표현하고 싶은지 등등의 단계는 관여하지 못한다. AI는 감정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없다. 그저 AI는 여러 단계 중 악보에 음표를 집어넣는 마지막 단계만 참여할 뿐이다. 그런 이유로 AI가 완성시킨 작품이 공허하게 다가온다. 음악 너머에 있는 우리가 사랑해 온 베토벤의 형상을 찾기가 어려운 것이다.

 

또한,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6년 전인 1822년 두 개 악장으로 작곡한 미완성 교향곡을 중국 화웨이 사의 의뢰를 받아 작곡가 겸 프로듀서인 루카스 켄터는 AI를 활용해 미완성 교향곡을 완성했다. 이 교향곡은 2019년 2월 런던 캐도건 홀에서 초연되었는데, AI가 작·편곡한 교향곡들에는 흥미로운 공통점이 발견됐다. AI가 거치는 학습 과정, ‘사람 창작자’가 제공한 입력값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박주용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AI 창작은 컴퓨터에 맡기면 자동으로 곡이 나오는 게 아니다”라며 “하나의 곡을 만들기 위해 인간이 주는 입력값이 중요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교하게 음악을 다듬어 나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슈베르트 미완성 교향곡 역시 슈베르트 음악의 특징인 음색, 음정, 리듬 등의 데이터를 컴퓨터에 입력하고, 이 과정에서 AI는 90곡에 달하는 슈베르트의 곡을 공부했고, 슈베르트에게 영향을 미쳤던 여러 작곡가들의 음악도 충분히 익혔다. 덕분에 이 교향곡 3악장의 도입은 1악장과 닮았지만, 스메타나와 차이콥스키, 멘델스존 등의 음악과 닮은 악구도 종종 등장한다. 이를 기반으로 변형 과정을 거치며 악보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인간 작곡가의 창작물처럼 감정을 부여하는 한편, 인공지능의 실수를 바로잡는 과정을 따로 거쳤다. 이 과정만 무려 한 달이 걸렸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인간은 과학기술을 위협적이라고 생각해 왔으나 기술 자체가 사람을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기술은 사람의 창의성을 더 잘 발휘하게 하는 도구로 AI는 인간 음악가들의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이며, 다가올 음악 미래는 AI를 잘 활용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AI의 기술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예술 창작의 영역에선 AI의 ‘완전 정복’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며 필자 역시 동감한다. 음악을 비롯해 미술, 문학 등 예술의 영역은 단지 결과물의 완성도만을 평가하는 분야가 아닌 인간의 영혼에 생기와 따뜻한 감동을 주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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