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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필요한 건 착한 사람”. 병오년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우리 곁을 홀연히 떠난 국민배우 안성기가 유치원에 다니던 어린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있던 문구이다. 아 과연 안성기답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개인적으로 국민배우와는 일면식도 없고 지나가는 거리에서조차 마주친 적도 없지만, 그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는 연기 잘 하는 좋은 배우이자 자기 관리가 철저한 사람 정도였다. 지난 9일 명동성당에서 엄수된 배우 고 안성기의 영결식 전후로 그에 대한 기사를 접하면서 많은 생각거리를 남겨주었다. 그와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영화계 선후배, 동료, 지인, 가족들의 그에 대한 평가는 필자가 생각했던 것 그 이상이었다. 배우로서의 업적이나 성과 보다 그의 인간 됨됨이에 대한 평가가 압도적이었다. 존경, 신뢰, 따듯함, 온화함, 친근함, 겸손, 정직 등 한 개인에 대한 평가가 거의 무결점의 삶을 살아온 종교인 수준이었다. 당연히 배우로서도 훌륭한 삶을 살아왔지만, 개인적인 성공이나 영달보다는 인격적으로 훌륭한 삶을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는 점에서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단순 경력이 화려한 국민배우가 아니라 이 시대의 ‘큰 사람’이 우리 곁을 떠난 것이다.
‘큰 사람’의 장례식과 영결식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그의 영정사진을 보고 개인적인 궁금증이 생겼다. 그의 나이를 얼추 알고 있었기에 저 사진이 언제적 사진이지, 영정사진에 올릴 사진이 꽤 많았을 텐데 유족들이 왜 저 사진을 골랐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영정사진이 1987년 개봉한 ‘기쁜 우리 젊은 날’이라는 영화를 촬영할 때 찍은 사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87년은 필자가 대학에 막 들어간 해였고, 개인적으로는 혼란기였고 사회 문제나 개인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에는 대중음악도 듣지 않았고 감상적인 영화도 잘 안 보던 때였다. 지금은 ‘기쁜 우리 젊은 날’이라는 영화를 누구랑 봤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애틋한 마음으로 그 영화를 봤던 감정만은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안성기가 출연하는 영화를 몇 번 봤던 거 같고, 그 이후에도 배우 안성기가 출연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의 영화를 꽤 봤던 기억이 있다. 아 맞다 안성기는 나의 청춘과 함께했던 배우구나. 그의 영화를 보며 웃고 웃으며 사랑을 배우며 내 젊은 시절을 보냈구나. 잠시 잊고 있었지만, 국민배우 안성기는 나한테도 배우 그 이상의 존재였던 것이었다. 그 어느 시절보다 기뻐해야 했지만 결코 기쁘지 않았던 우리 젊은 날에 위로를 해주고 따듯함을 느끼게 해주었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개인적 성공보다는 도덕적 완성을 추구했던 ‘큰 사람’ 안성기 우리 곁을 떠나 한국 영화의 산증인으로 우리 시대 청춘을 함께했던 따듯했던 배우로 남아 소명의식을 가진 배우로서 우리 가슴속에 영원히 남을 듯 국민배우가 한국 사회에 남긴 유산이 사회적 자산으로 널리 확산되기를 바라
사실 배우 안성기는 국민배우라는 명성을 얻기 전에 ‘천재 아역’으로 우리 영화계에 널리 알려졌다. 필자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가 어린 시절 출연한 영화가 70여 편이라고 한다. 성인이 된 후 사회 고발 성격이 강한 문제작에도 잇따라 출연했고, ‘태백산맥’, ‘남부군’, ‘하얀전쟁’ 등 한국 사회의 금기 영역이자 아픈 상처인 레드 콤플렉스를 깨뜨리는 영화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영화계를 포함한 문화 예술 분야까지도 폭압적이었던 군사 정권의 시대에 문제 인식이 강하고 사회성이 짙은 영화에 출연하다는 것은 한 배우로서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여타 배우와 달리 출연료나 대우보다 영화 자체의 작품성과 주제 의식을 중심에 두고 작품 활동을 해왔다는 점은 그가 배우로서 추구하는 철학과 가치가 명확했던 것 같다. D 식품의 커피 광고 제의를 받고는 “영화에 방해가 될까 봐 걱정입니다”라는 고민을 주변에 털어놓았다고 한다. 1980년 당시 배우들의 겹치기 출연이 관행이었던 시절에 안성기는 집중력을 갖고 연기에 집중하기 위해 겹치기 출연을 거부했고, 이후 한국 영화계에서 겹치기 출연이라는 관행이 사라졌다는 평가도 있다. 1997년 외환 위기 때는 “지나치게 높은 배우들의 출연료가 영화 발전에 장애가 된다”라며 출연료를 자진 삭감했고, 한·미 FTA 협상 때에는 ‘한국영화 지키기 운동’에 적극 나서기도 했다. 그는 배우라는 직업을 단순 돈벌이나 생계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배우라는 직업 자체를 소중하게 여긴 소명의식을 가진 배우로 기억될 것이다.
독일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가 소명의식을 가진 정치인을 원했듯이, 큰 사람 안성기는 소명의식을 가진 배우로서 그의 생애를 훌륭하게 마감했다. 경박함과 천박함을 당연시하며 오직 개인적 성공만을 부추기는 요즘 세태에 한 배우로서 너무나 철저했고 한 인간으로서 모두에게 따듯했던 그의 여정이 우리 사회에 남긴 사회적 자산이 널리 확산되기를 바란다. 한국 영화의 한 시대를 살다간 큰 배우 안성기가 벌써 그리워진다. 기쁜 우리 젊은 날은 언제나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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