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알리는 클래식 음악이라 하면 대개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을 먼저 떠올리곤 합니다. 경쾌한 바이올린 선율은 분명 매력적이지만, 3월의 수원화성 성곽길을 걷다 보면 그보다 조금 더 묵직하고 드라마틱한 울림이 그리워질 때가 있습니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을 뚫고 솟아오르는 새싹의 강인함을 마주할 때, 모진 시련과 반대를 뚫고 찬란하게 피어난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 독일 1810-1856)의 교향곡 제1번 ‘봄’이 떠오르는 것은 아마 그 때문일 것입니다.
슈만의 음악이 이토록 시적이고 서정적인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출판업자이자 서점 주인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책 향기 속에서 자란 슈만은 자연스럽게 문학적 영감을 선율에 투영하는 법을 익혔습니다. 하지만 10대 시절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가계는 기울었고, 어머니는 아들이 안정적인 법률가가 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어머니의 부탁을 저버릴 수 없었던 슈만은 결국 라이프치히 법대에 입학합니다. 그러나 운명은 그를 차가운 법전 앞에 가두어두지 않았습니다. 법률 공부는 뒷전으로 미룬 채 피아노에 심취한 슈만은 당대 최고의 피아노 교수였던 프리드리히 비크를 찾아가 제자가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운명적인 여인, 스승의 딸이자 천재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 비크를 만납니다.
어린 클라라를 처음 본 순간부터 슈만은 그녀를 가슴에 품었습니다. 그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일편단심으로 기다린 슈만은 마침내 스승 비크에게 결혼 승낙을 청합니다. 하지만 제자의 불안정한 미래를 걱정했던 비크는 딸과의 결혼을 결사반대했습니다. 결국 슈만은 법대 시절의 지식을 뜻밖에도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발휘하게 됩니다. 스승과 제자가 법정에서 마주 서는 끈질긴 소송 끝에, 슈만은 마침내 승소하여 1840년 클라라와 부부의 연을 맺습니다. 이 극적인 승리 직후, 환희에 젖어 단 4일 만에 초안을 완성한 곡이 바로 오늘 소개할 ‘봄’ 교향곡입니다.
곡의 시작을 알리는 트럼펫과 호른의 힘찬 팡파르는 단순히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신호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사랑을 가로막았던 세상의 편견과 '긴 겨울' 같은 시련을 끝내고 마침내 선포하는 승리의 외침입니다. 슈만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겨울의 고통이 어떻게 봄을 불러오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법전 대신 악보를 택하고, 스승과의 소송까지 불사하며 지켜낸 그의 사랑이 웅장한 선율이 되어 우리에게 말을 건넵니다. 비발디의 봄이 아름다운 자연의 묘사라면, 슈만의 봄은 인간의 의지가 만들어낸 기적인 셈입니다.
수원화성 행궁의 봄 풍경은 정조의 굳건한 의지와 백성을 향한 따뜻한 정조(情調)가 만나는 지점에 있습니다. 슈만의 음악 역시 고집스러울 정도의 예술적 집념과 클라라를 향한 다정한 서정성이 공존합니다. 이번 3월, 삶의 무게나 현실의 벽에 부딪혀 잠시 움츠러든 분들이 있다면 슈만의 교향곡 1번을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법대를 자퇴하고 사랑을 쟁취해낸 슈만의 뜨거운 심장 소리가, 여러분의 일상에 새로운 용기를 불어넣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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