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호르무즈 해역의 긴장으로 인한 경제적 불안과 동유럽에서 들려오는 장기화된 전쟁의 비극은 2026년 눈부시게 아름다운 봄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습니다. 무고한 생명들이 쓰러져가는 이 시대, 우리는 무엇으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평화를 꿈꿀 수 있을까요? 그 해답을 찾기 위해, 200년 전 청력을 잃은 절망 속에서도 "인류는 하나"라고 외쳤던 거장, 베토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면 좋겠습니다.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은 서양 음악사에서 가장 위대한 혁명으로 불립니다. 그는 기악곡인 교향곡에 인간의 목소리를 결합하는 파격적인 시도를 단행했습니다. 악기만으로는 도저히 다 담을 수 없었던 '인간에 대한 사랑'과 '평화에 대한 갈망'을 직접적인 언어로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선택한 가사는 독일의 대문호 프리드리히 쉴러의 시 '환희에 붙여(An die Freude)'였습니다.이 시는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된다"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베토벤은 이 시를 바탕으로 4악장의 거대한 합창을 구성하며, 전쟁과 분열로 점철된 세상을 향해 화합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곡이 탄생할 당시 베토벤은 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는 고립된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그가 살던 비엔나 역시 나폴레옹 전쟁의 여파로 전염병이 돌고 물가가 치솟는 등 오늘날 우리가 겪는 고통과 닮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베토벤은 자신의 불행에 매몰되는 대신, 고통받는 인류를 향해 손을 내밀었습니다. 4악장에서 바리톤 독창자가 외치는 "오 벗이여, 이런 소음이 아니라 더 즐겁고 기쁜 노래를 부르자!"라는 외침은, 포화 소리와 증오의 언어를 멈추고 평화의 선율로 하나가 되자는 절실한 호소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4월의 불안 속에서 이 곡을 들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베토벤의 '합창'은 역사적인 순간마다 늘 우리 곁에 있었습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번스타인의 지휘 아래 울려 퍼졌던 이 곡은 분단의 종식을 선언하는 평화의 상징이었습니다. 물론 인류의 비극 앞에 연주되는 곡들은 저마다의 역할이 있습니다.
9·11 테러 직후,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을 때는 사무엘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가 흐르며 희생자들을 깊이 애도했고, 이듬해 추모 음악회에서는 베토벤의 정신을 계승한 여러 위령곡이 연주되었습니다. 이처럼 클래식은 때로는 바버처럼 우리와 함께 울어주고, 때로는 베토벤처럼 다시 일어설 용기를 줍니다. 쉴러의 시가 베토벤의 선율을 타고 흐를 때, 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호르무즈 해역 건너편의 사람들도, 유라시아 대륙의 무고한 시민들도 우리와 똑같이 평화를 갈망하는 '형제'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4월이 지나가기 전, 다시 손을 맞잡을 시간을 위하여 세계 평화를 위해 상심한 마음을 안고 이 곡을 감상해 보시길 추천합니다. 거대한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만들어내는 장엄한 울림은, 전쟁과 유가 폭등으로 얼어붙은 우리의 마음을 녹여줄 것입니다. "온 인류여, 서로 껴안으라! 전 세계의 입맞춤을 받으라!" 베토벤이 쉴러의 시를 빌려 던진 이 뜨거운 한마디가, 상처받은 모든 민족과 상심한 여러분의 마음에 작지만 강한 평화의 씨앗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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