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사방이 눈부신 초록으로 채워지는 5월입니다. 자연이 생명의 에너지를 뿜어내는 이 계절, 클래식 음악계 역시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축제의 시간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 권위의 콩쿠르를 석권한 스타 연주자들의 공연은 티켓 오픈과 동시에 ‘전석 매진’ 신화를 기록하고,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대형 내한 공연에도 빈자리를 찾기 힘듭니다. 겉보기에는 한국 클래식 음악계가 가히 ‘황금기’를 맞이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지역 음악계의 최전선에서 치열하게 무대를 기획하고, 강단에서 제자들을 길러내며, 동시에 건반 위에서 평생을 보내온 음악가로서 바라보는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화려한 조명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클래식계의 오랜 숙제인 ‘문화적 양극화’라는 씁쓸한 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일부 스타 연주자를 향한 폭발적인 팬덤 소비가 클래식 시장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지만, 정작 지역에서 묵묵히 예술혼을 불태우는 음악가들의 무대는 소외당하기 일쑤입니다. 스타가 없는 무대는 뛰어난 연주력과 깊은 예술성을 갖추었음에도 관객을 찾지 못해 고군분투하는 불균형이 심각합니다.
수원음악협회를 이끌며 다양한 음악회를 기획할 때마다 깊은 고뇌에 빠지곤 했습니다. 우리 지역 출신 음악가들의 기량과 음악성은 세계적인 무대와 비교해도 결코 뒤처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이 오직 미디어가 만든 거대한 팬덤만을 좇아 발걸음을 옮길 때, 예술기획자로서 느끼는 책임감과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현재의 ‘스타 신드롬’은 클래식 음악 자체에 대한 저변 확대라기보다 일시적인 소비 현상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이 해묵은 과제를 해결하고, 클래식이 특정 계층이나 스타의 전유물이 아닌 ‘시민 모두의 일상적 교양’으로 뿌리내리기 위해 이제는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합니다. 대형 공연의 일방적인 소비를 넘어, 우리 삶의 터전인 이곳 수원에서부터 ‘깊이 있고 고상하며, 내면의 성장을 이끄는 클래식’의 자생적 생태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첫째, ‘문턱은 낮추되 본질의 품격은 지키는 기획’이 필요합니다. 대중성이라는 명목하에 음악의 깊이를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작품의 내면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한 해설과 정밀한 프로그래밍을 더해야 합니다. 둘째, ‘일상 공간의 음악회 활성화’입니다. 거대한 대공연장 중심의 문화에서 벗어나 도서관, 미술관, 혹은 소규모 실내악 무대를 통해 연주자의 숨소리와 악기의 떨림을 가장 가까이서 느끼게 해야 합니다. 스타를 보기 위해 멀리 서울로 향하지 않아도, 내가 사는 수원에서 최고의 음악적 감동과 내밀한 위로를 경험할 수 있다는 ‘신뢰’를 심어주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제 피아니스트이자 교육자, 그리고 예술기획자로서 저의 각오를 새롭게 다집니다. 화려한 숫자가 주는 ‘매진’의 환상에 매몰되지 않겠습니다. 우리 수원 지역 음악가들이 가진 단단하고 빛나는 재능이 시민들의 삶 속에 스며들 수 있도록, 더 정교하고 품격 있는 무대를 만드는 데 앞장서겠습니다.
하나의 거대한 숲이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아름드리 큰 나무뿐만 아니라, 땅을 덮고 있는 작은 풀과 야생화들이 함께 어우러져야 합니다. 수원의 클래식 음악 토양이 이 계절의 푸른 나무들처럼 더욱 깊고 무성하게 자라나도록, 시민들의 일상에 고상한 예술적 교양과 감동을 채워 넣는 든든한 가교가 될 것을 약속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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