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같은 경기’. 1970년대 남한과 북한의 스포츠 경기를 기억하는가? 1980년대 대 일본전에 임하는 한국 선수들의 정신자세와 국민들의 응원 문화는 어떠했는가? 목숨을 건 전쟁 그 자체였다. 북한이나 일본과의 경기에서 이기면 대한민국 체제의 승리였고, 승리를 한 우리 선수들은 애국자이자 국가 영웅이었다. 만일 지면 전 국민의 질타를 받았고 심지에 국가대표 감독과 선수는 매국노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유명 국가대표 선수가 한일전에 패배한 후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김포공항에 내리는 것이 두려웠다고 하는 일화도 있다.
전쟁 같은 경기는 우리나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냉전시대인 1980년 소련 모스크바에서 열린 올림픽대회에는 미국, 한국을 비롯한 자본주의 국가들 상당수가 불참하였다. 4년 뒤에 열린 1984년 미국 LA 올림픽에는 소련을 포함한 사회주의 국가들이 불참을 선언하였다. 평화의 상징인 올림픽에도 정치적 이유로 참가와 불참이 결정되었고, 스포츠맨십보다는 엄숙한 국가주의와 냉전체제라는 정치적 논리가 적용되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 당시에는 국가체제와 애국주의가 스포츠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국가대표 선수들은 국가를 대신해 전쟁 같은 경기를 치를 수밖에 없었고, 국가대항전을 응원하는 국민은 단순 스포츠 경기의 승패가 아닌 국가 간 전쟁에서의 위대한 승리와 참혹한 패배를 경험하였다. 아직도 축구와 같은 일부 종목에는 국가주의의 잔상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1990년대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로 인한 냉전체제의 해제와 범세계화 전개 이후 엄숙한 국가주의에 기반한 전쟁 같은 스포츠 문화는 점점 사라져 가는 추세임은 분명하다. 우리나라도 체제 경쟁에서 이겼다는 판단인지 언제부턴가 북한과의 경기에 여유를 갖고 양쪽을 다 응원하고 있고, 일본 선수라도 운동실력이 뛰어나고 인간적 매력도 있는 야구의 오타니 같은 선수에 대해서는 열렬한 응원을 보여주고 있다.
엄숙한 국가주의에 기반한 ‘전쟁’ 같은 스포츠 문화는 사라져 가는 추세 스포츠 경영을 체육인들만의 손에 맡겨서는 안된다는 공감대도 있어 시민이 참여하고 국가가 지원하는 스포츠 관리 시스템이 필요해 시민이 주도하고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스포츠 문화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어야
스포츠에서 국가주의가 약해지고 국가의 간섭이 줄어들면서 스포츠 경영은 자연스레 체육인들의 손으로 넘어갔다. 각 국가별 종목별로 차이는 있지만, 선수 출신이 종목 협회의 회장을 맡고 그 협회의 운영도 주로 체육인들이 맡고 있다. 이 과정에서 몇 개 종목에서는 일부 체육인들의 부패와 비리가 발생하였고, 외부에서의 개선 요구가 묵살되면서 퇴행의 길을 걷고 있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가 예선 탈락하면서 불거진 대한축구협회 사태이다. 월드컵 이전에도 축구계 내부에서는 축구협회장의 독단적 운영과 장기집권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어왔고, 홍명보 감독 선임을 둘러싸고는 특정 학교 출신의 카르텔과 감독 선임 과정에서의 불투명성과 공정성에 대한 개선 요구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축구계 내부에서의 자성의 목소리가 묵살되다가 이번 월드컵 예선 탈락으로 축구협회와 협회장에 대한 그동안의 문제제기가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대대적인 개혁안이 예고된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언론이 축구팬을 비롯한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한 정부와 정치권에서 축구협회의 문제점을 바로잡기 위한 활동에 들어갔다. 여기서 필자가 주목하고 있는 점은 정부의 관리 미흡이나 축구협회의 문제점 그 자체보다는 축구협회 운영 전반에 걸쳐 축구팬을 포함한 시민들의 목소리가 수렴되고 실제 운영에 반영될 수 있는 소통 창구가 결여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스포츠계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국가 주도로 체육계 운영 전반을 관리하자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이미 대형 스포츠 이벤트 하나로 전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온 나라가 들끓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 국민주권시대에 걸맞게 스포츠계 운영에도 시민이 주요 의사결정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관리 감독할 수 있는 시민참여제도를 제도화하자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국가의 역할이 중요한데, 과거와 같은 최종 의사결정권자가 아니라 시민참여제도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 협회의 구조적인 병폐는 없는지를 확인하고 지원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지금은 우리나라 최고 인기 스포츠인 프로야구가 출범 자체는 정치적인 불순한 의도가 개입되었고 응원문화에 지역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난 시절도 있었다. 현재 프로야구 흥행은 가히 폭발적이며 야구팬은 자신이 좋아하는 다양한 방식으로 프로야구를 즐기고 있다. 시민이 주도하고 즐길 수 있는 프로야구와 같은 새로운 응원 문화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어, 시민이 주도하는 시스템이 사회 전 영역에서 든든하게 뿌리를 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제 우리 모두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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