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관객들의 발길을 영화관으로 향하게 하며 큰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3000년 전 호메로스의 대서사시를 시각적·음악적으로 재해석한 이 거장 작품은 단순히 고전을 스크린에 옮겨놓는 것에 그치지 않고, 수많은 '소음' 속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매우 강렬하고 현재적인 질문을 던진다.
민방위 훈련 날 온 도시를 울리던 둔탁한 사이렌 소리에 멈춰 섰던 차들, 어린 시절 수업의 시작과 끝을 알리던 종소리, 그리고 핸드폰 화면을 깨우는 재난 문자 알람까지. '소리'는 늘 우리의 일상을 정지시키고 찰나의 경각심을 깨우는 가장 강력한 신호였다. 영화 속 중심 에피소드인 《오디세이아》의 사이렌(Siren) 역시 치명적인 소리의 신화이다. 오늘날 도로를 가르는 구급차의 사이렌이 생명을 구하는 '경고의 소리'라면, 신화 속 사이렌의 노래는 영혼을 마비시키는 '유혹의 소리'였다. 긴급 경보음의 이름이 유혹의 마녀 '사이렌'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통찰을 던진다.
클래식 음악에서 소리의 멈춤은 극적인 긴장감과 새로운 전환을 의미이다. 악보 위 '페르마타(늘임표)'나 '휴지부(General Pause)'처럼, 긴급 사이렌 소리는 우리 삶의 분주한 악장에 잠시 쉼표를 찍게 한다. 구급차 소리에 가던 길을 비켜서는 것이 위험을 인지하고 타인을 지키기 위한 '자발적 멈춤'이라면, 현대 사회의 디지털 자극과 도파민 알람은 우리를 무작정 끌어당기는 '유혹의 사이렌'이다. 진정한 경고에는 귀를 기울여 대비하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유혹의 소리에는 휩쓸리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
놀란 감독의 연출에서도 돋보이듯, 오디세우스는 사이렌의 노래를 들으면서도 배를 난파시키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돛대에 단단히 묶었다. 그는 소리를 '듣는 자유'를 누리되, 행동을 '통제하는 절제'를 선택한 것이다. 이는 클래식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닮았다. 100여 명의 연주자가 폭발적인 음향을 만들어낼 때, 지휘자의 엄격한 템포라는 '돛대'가 없다면 그 소리는 예술이 아닌 소음이 된다.
정해진 틀과 절제 속에서 완벽한 심포니가 탄생하듯, 현대인의 삶도 스스로를 잡아주는 단단한 기준이 있을 때 자극적인 소음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다. 긴급 재난 알람이 우리에게 "지금 안전한가?"를 묻는다면, 신화 속 사이렌은 "당신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를 묻는다.
소방차의 사이렌에 길을 비켜주듯, 때로는 번잡한 일상을 잠시 멈추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때이다. 영화가 스크린 넘어 던지는 울림처럼, 소음 너머에서 단단하게 울려 퍼지는 자신만의 인생 교향곡을 완성하기 위해 오늘 나의 삶을 지탱해 줄 돛대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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