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를 풍미했던 토마스 모어는 반전의 삶을 살았다. 평가도 엇갈리고 있다. 청년시절 수도자의 길을 걸었지만, 열 살이나 어린 신부와 결혼하면서 속세로 돌아온다. 첫 번째 반전이다. 영국 국왕 헨리 8세의 비서로 지내면서 재상과 대법관에도 오른다. 종교의 자유를 설파했던 역작 <유토피아>를 썼으면서도, 정작 종교개혁에 대해선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두 번째 역전이다.
이 부분에 대해선 아직까지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헨리 8세는 영국 국교회인 성공회를 가톨릭에서 독립시켰다. 그런데 토마스 모어는 어떻게 개신교를 비판했을까. 사실 헨리 8세는 교황과 정치적 이유로 틀어졌을 뿐, 대륙의 루터주의나 개혁신학 등은 이단이라는 시각이었다. 그래서 “관할권을 벗어난 로마 주교의 불법적이다. 영국 교회 보호자는 영국 군주가 맡는다”는 입장이었다.
토머스 모어는 세속 군주가 교회를 보호한다는 헨리 8세의 주장에는 토를 달지 않았다. 하지만 교회 머리는 교황이고 몸과 수족 은 추기경단이라는 입장은 명쾌했다. 그는 이 같은 논리로 숱한 개신교도들을 종교재판을 빌려 화형 시켰다. 그랬던 그도 마침내 반역죄로 사형선고를 받는다. 최후 진술은 “내 목은 짧으니 조심해 자르게”였다. 마지막 순간 애달픈 유머였다. 세 번째 반전이다.
그의 마지막 역전은 운명한지 400여 년이 흐른 뒤 이뤄졌다. 가톨릭교회가 그를 성인(聖人)으로 시성(諡聖)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성공회 성인록에도 올랐다. 반(反) 종교적 공산주의에 반대해 항거하는 정치 및 법률가의 수호성인 반열에도 올려졌다. 지난 2000년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공식적으로 정치가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기도 했다. 모순의 삶을 살아간 인물의 대반전이다.
토마스 모어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그런데, 그의 저서 <유토피아>는 수백 년 전 현대사회에 ‘기본소득’이라는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졌다. <유토피아> 당시의 유럽 대륙은 철저한 계급사회였고, 봉건사회였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불평등하다는 논리가 지배했던, 그런 척박한 사회였다. 또 다른 명쾌한, 그리고 의미 있는 반전이다.
중세시대 모순의 삶을 살아갔던 한 인물이 제기했던 기본소득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비록 봉건시대였지만) 국가가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리도록 조건 없이, 노동 없이 지급하는 소득이라는 개념이었다. 재산의 많고 적음이나 근로 여부에 관계없이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생활을 충분히 보장하는 수준의 소득을 무조건적으로 지급하는 소득이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유토피아>를 통해 처음 등장했던 기본소득에 대해 현대적으로 해석해보자. 사실 기본소득은 한 사회 가치의 총합은 구성원들이 함께 누려야 한다는 데서 비롯됐다. 복지의 기본적인 개념과도 일맥상통한다. 국민이 최소한 누려야 하는 권리이기도 하다. 스위스나 핀란드 등 오늘날 복지 국가의 롤모델인 유럽의 복지제도도 따지고 보면 기본소득의 논의부터 시작됐다는 게 관련 학계의 견해다.
기본소득은 이미 유럽에선 적어도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거나, 진행되고 있다. 논의되고 있는 사례로는 스위스를 들 수 있다. 스위스 정부는 매월 어른에게는 2천500프랑(300만 원), 18세 미만 어린이와 청소년 등에게는 625프랑(78만 원)씩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방안에 대한 찬반 투표가 열렸다. 지난 2016년 6월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76.9%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런데도 논의는 현재도 유효하다.
핀란드 정부는 지난 2017년 초부터 2년 동안 실업자로 복지수당을 받는 국민 중 2천 명에게 매월 560유로(70만6천 원)를 기본소득으로 지급하고 있다. 대상은 무작위로 선정됐고, 수급자는 사용처를 보고하지 않아도 되며 2년 이내 일자리를 얻어도 받을 수 있다. 빈곤 감소와 고용 효과 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뒤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기본소득의 보편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경기도도 기본소득 도입 및 보편화 등에 올인 하고 있다. 특히, 제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면서 청년실업 극복을 위해서도 기본소득 보편화는 시급하다는 게 경기도의 입장이다. 청년기본소득, 산후조리비 지원, 무상교복, 생애 최초 국민연금, 군복무 청년 상해보험, 농민기본소득, 아동수당,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 등이 그것이다. 전국 최초로 진행되고 있는 지역화폐도 가세했다.
재원 마련은 가능할까. 경기도는 이 같은 질문에 대해 투기 소득에 대한 중과세 부과, 소득세 최고 세율 인상, 법인세 인상, 토지세와 다국적 기업 공조 과세 등으로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물론 조세 저항도 충분히 감안해야 하겠다. 하지만, 투기소득에 대한 중과세 부과와 소득세 최고 세율 인상 등에 대해선 국민적 공감대가 구축돼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기본소득을 도입하고 보편화하면 거둘 수 있는 효과는 무엇일까. 경기도는 소득 불균형과 내수 침체, 일자리 감소 등에 대한 완화가 기대된다고 보고 있다. 물론 딱 맞는 정답은 아니겠지만, 시기적절할 순 있다. 역대 정부는 경제문제에 대해 낙제점을 받았다. 현 정부도 자유로울 수 없다. 모순의 시대다. 그만큼 우리 경제는 분명 중병을 앓고 있다. 세계 경제 흐름도 혼돈스럽긴 마찬가지다. 토마스 모어 시대도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흠결이나 단점이 없는 100% 완벽한 정책은 없다. 이재명호가 올인 하고 있는 기본소득 도입과 보편화도 그렇다. 결과에 치중하는 실용주의 차원에서도 딱히 정답일 수는 없다. 정답에 가까울 뿐이다. 재원 마련 등의 현실 가능성도 떨어지고, 기존 복지체제를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와 포퓰리즘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추진하는 게 백번 낫다.
경기도가 오는 29~30일 이틀 동안 세계 최초로 수원컨벤션센터에서 ‘2019 대한민국 기본소득 박람회’를 연다. 김용 경기도 대변인은 최근 브리핑을 통해 “기본소득 정책이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시행되고 있는 내용을 전달하고, 지역화폐가 제공하는 생활 속 편익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 기본소득과 지역화폐가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생활정책임을 알리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이 지사의 도정철학은 분명 공정과 공평이다. 道 슬로건인 ‘새로운 경기, 공정한 세상’도 여기서 나왔다. 지난 2017년 대선 캐치프레이즈도 그래서 ‘공정한 대한민국’이었다. 도지사 당선 이후에는 ‘공정한 경기도’에 올인 하고 있다. 기본소득 도입과 보편화는 400여 년 전 조선시대 실패한 선비 정여립이 추진했던 ‘대동세상(大同世上)’과 연결된다. 더불어 잘살고 화평 하는 세상 실현이다. 수백 년의 시공을 훌쩍 뛰어 넘어 대동세상이 구현돼야 하는 까닭이다. 이재명호가 순항해야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허행윤 수원화성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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