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를 하지 않은 한 시민을 경찰 네 명이 강제로 제압하고 수갑을 채웠다. 그녀의 딸이 보고 있는 바로 앞에서 벌여진 일이다.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꼭 착용해아 하는 시기이니 정당한 법 집행행위일 수 있다. 그 여성이 마스크 착용을 요청하는 경찰에게 대들었다고 했다. 경찰에게 저항하는 시민은 힘으로 제압하도록 매뉴얼에 있을 것이다. 그들 네 명의 경찰은 매뉴얼에 따라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했을 것이다. 제압당하는 여성의 딸 앞에서. 미국에서 지난 5월에 있었던 일이다.
선진사회일수록 개개인의 판단보다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매뉴얼에 따라 행동한다고 생각해왔다. 문서로 규정된 매뉴얼도 있겠지만, 경험의 반복을 통해 은연중에 만들어진 비문자의 매뉴얼도 있다. 개인의 욕망도 그 사회가 허용하는 범위에서 표출된다.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에게 이 매뉴얼은 더욱 엄격하게 요구된다. 공무원의 잘잘못은 이 매뉴얼을 갖고 판단한다.
복잡한 사회로 갈수록 더 많고 정교한 매뉴얼이 필요해진다.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다양하고 혼란스런 현실에 더 자주 부딪히게 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상황에 맞게, 수많은 경로로 분화하며 발생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대응방식을 만들어야 한다. 코로나19 대응과정에서 확인되었듯이, 대규모 감염병이라는 상황에 어떤 매뉴얼을 가지고 대응하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품격이 달라진다.
그렇다면 매뉴얼이 잘 만들어진 미국사회는 선진사회일까? 매뉴얼에 따라 법을 훌륭하게 집행하는 미국사회는 좋은 사회일까? 법을 어기는 시민을 매뉴얼에 따라 행동했던 네 명의 경찰은 우수한 법 집행자일까? 한 여성을 네 명의 남성 경찰이 힘으로 제압하고 수갑을 채운 후 연행하는 장면을 본 그녀의 딸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그럼 미국이라는 사회에는 그녀의 딸에게 진행해야 할 심리치료 매뉴얼은 있을까? 참으로 궁금하다.
아무리 많고 정교한 매뉴얼을 만들어도, 그것이 담을 수 없는 미래는 있게 마련이다. 바이러스 대유행 시기에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미착용 시민에게, 저항하려는 시민에게 적용해야 할 매뉴얼은 있을지 몰라도, 딸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규정하는 매뉴얼은 없을 것이다.
매뉴얼이 없다고, 모든 현실을 매뉴얼이 있는 상황으로 끌고 와야 할까? 어머니와 딸이 함께 있는 현실, 어린 딸이 두 눈을 뜨고 지켜보는 현실은 매뉴얼에 없으니, 매뉴얼에 있는 저항하는 시민에게 적용하는 상황에 따른 행동은 바람직한 업무 수행이었을까? 어떻게 생생한 현실과 매뉴얼의 상황과의 괴리를 해결해야 할까?
메르스 사태의 경험이 감염병에 대한 대응체계를 발전시켰다고 한다. 그 덕분에 우리는 잘 만들어진 매뉴얼과 그에 따른 대응으로 K-방역이라는 성과를 내고 있다. 경험을 통해 매뉴얼을 발전시켜 나가는 사회,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 나라가 선진사회고 좋은 나라다.
그러나 미래는 경험보다 더욱 복잡하게 다가온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현실로 부딪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괴리를 어떻게 너머 설 것인가 매뉴얼로 담을 수 없는 미래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매뉴얼 사회를 넘어 무엇이 필요할까?
매뉴얼이 없는 현실과 매뉴얼로 규정된 상황의 괴리를 너머서는 길은 행위자의 공감능력이다. 현실과 상황의 괴리는 행위자의 자율적 판단에 맡겨진다. 현실을 상황으로 끌어내지 말고, 직면한 현실을 이해하고 창조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매뉴얼에 빠지지 않고 공감능력을 가지고 창조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런 사회가 선진사회이고, 그런 나라가 좋은 나라이다.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새로운 매뉴얼을 만들고 있다. 과거 상황을 규정하는 지침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매뉴얼을 바탕으로 한 걸음 더 나가야 한다. 그때 가장 필요한 것은 현실에 관계되어 있는 사람을 살피고, 생명을 생각하는 공감능력이다. 매뉴얼을 너머 공감능력을 키워가자.
유문종(수원2049시민연구소 소장)
|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