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조의 동물사랑과 ‘자휼전칙’ 제정
김준혁 | 입력 : 2020/10/22 [15:49]
어느 날 조정에서 신하들이 정조에게 새로운 건의를 했다. 정조를 태우고 다니는 말이 나이가 먹어 국왕인 정조를 태우고 다니기 힘이 드니 그만 버리라고 하였다. 정조는 이 말을 듣고 이렇게 대답했다. "이 말은 나를 태우고 다닌지 10년이 넘었다. 그간 나를 위해서 참으로 많은 고생을 했다. 그런데 지금 나이가 먹었다고 버리라고 하니 참 안타깝다. 그러나 나는 저 말을 버릴 수 없다. 저 말이 비록 나를 태울 수는 없어도 나를 따라 다닐 수는 있다. 내가 행차를 할 때 내 옆에서 어떤 짐도 지우게 하지 말고 나를 따르게 하라“
참 따스한 이야기다. 자기와 함께 한 말을 버리지 못하게 하고 자신을 따르게 하는 정조의 마음은 정말 귀감이 된다. 요즘 이야기 하는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신하들이 이제 말이 노쇠하였으니 버리고 튼튼한 새 말로 바꾸라고 하면 그냥 그리하라 해도 될 텐데, 정조는 하찮다고 생각한 말에게조차 깊은 애정을 주며 그 말을 지켜주려 한 것이다. 이런 마음을 갖고 있는 정조였기에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을 돌보는 정책을 재위 내내 지속적으로 만들었다.
그가 즉위하고 나서 가장 먼저 만든 법안이 '자휼전칙'이다. 10살 이하의 아이들이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면 지방고을 수령들이 책임지고 길러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의 주요 내용이다. 가난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버리는 경우가 횡횡했고, 전염병이나 뜻하지 않은 사고로 부모가 죽어 어쩔 수 없이 고아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 고아가 되면 친척들이 데려다 키워야 하는데, 그들도 형편이 어려우니 모른 척 외면하곤 했다. 그러니 부모로 부터 버려진 고아이거나, 부모가 죽어 고아가 된 아이들이 살기 위해 부유한 집에 노비로 들어가는 상황이 되었다.
고아가 되어 슬프기가 그지 없을 텐데 노비까지 되니 그 아이들의 슬픔과 고통은 얼마나 컸을까? 정조는 이 아이들을 구제하고 안전하게 키울 방법을 궁리했다. 그리고 ‘자훌전칙’ 이란 법을 만들었다. 이 법이 나오기 전에 숙종도 고아들을 키울 법을 제정했다. 이른바 '유기아수양법'이다. 이 법은 고아들을 지역의 유지들이 돈을 내어 키워주면 좋겠다는 취지의 법안이다.
그런데 유지들에게 돈을 내게 하는 강제성이 전혀 없기 때문에 효과는 거의 없었다. 처음 한두 번이야 고을의 수령 눈치를 보고 고아들을 위한 기금을 낼 수 있겠지만 나중에는 외면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이것이 현실이니 가난하고 힘없는 어린 고아들을 키울 수 없는 것이다.
정조는 고아들을 지역 유지의 지원으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10살 이하의 아이들이 고아가 되면 고을 수령들이 마을 외곽에 집을 지어 아이들을 거주하게 하고 관아의 식량과 옷감으로 먹이고 입히게 하였다. 갓난아기들은 마을에 젖을 줄 수 있는 여인에게 그녀의 자식과 함께 젖을 주게 하고 대신 쌀을 주게 하였다. 우리 역사상 최초로 고아들을 국가가 책임지고 기르게 한 법이 만들어지고 시행된 것이다. 하찮다고 생각하는 말에게 조차 깊은 사랑을 갖고 있는 정조였기에 인간에 다한 사랑과 존중은 더 깊고 컸던 것이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이 커지자 고아원과 양로원 등 사회복지기관에 대한 시민들의 지원이 끊기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기관들 운영이 어려워진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결국 이러한 사회복지기관에 대한 지원은 국가의 몫이다.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 현재 기본 인권과 생존을 논의하고 이를 해결해야 한다.
200년 전에도 가난하고 힘없는 고아 기르기를 국가가 책임을 졌는데, 지금 우리가 못할 이유가 없다. 수원. 화성, 오산은 개혁의 시범도시로 만들어진 곳이니 우리 지역에서 먼저 확실한 모범을 보여 모든 사회복지기관이 경제적 어려움 없이 안정되게 운영할 수 있게 하자.
김준혁(한신대학교 교수, 한국사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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