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노작홍사용기념사업회 홍일선 이사장에 대한 기대

김준혁 | 기사입력 2021/03/24 [17:03]

[기고]노작홍사용기념사업회 홍일선 이사장에 대한 기대

김준혁 | 입력 : 2021/03/24 [17:03]

▲ 김준혁 교수    

 

우리 근대 희곡작가의 대명사는 노작 홍사용 선생이다. 안경을 쓴 홍사용의 사진은 그가 진지한 사색과 열정의 인물임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를 기리는 홍사용 문학관이 현재 화성시 동탄신도시에 있지만 사람들은 늘 수원의 작가로 인식하고 있다. 그 이유는 그가 살던 시대에 화성과 오산은 모두 수원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홍사용 역시 수원의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처음 태어난 것은 용인이었다. 부친은 대한제국의 헌병 장교를 지낸 홍철유였다. 대한제국기 헌병 장교는 일제에 항거하는 황실의 충성스런 군인이었다. 홍사용이 평생을 반일 문학의 선봉에 선 것은 부친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생후 100일만에 서울 재동으로 이사하였다가 9살에 수원군 동탄면 석우리로 이주하였다. 이후 이곳을 중심으로 생활하였는데 이 마을은 홍사용이 거처한 이후 명시인들이 여럿 탄생한 곳으로 유명하다. 그중 대표적인 시인이 한국평화포럼의 홍일선 시인이기도 하다.

 

통탄 석우리에서 성장하던 중 1916년 휘문의숙에 입학하였으며 재학중에 박종화와 함께 등사판 작품집 '피는 꽃'을 펴냈다. 1919년 거족적으로 전개된 3'1만세운동에 학생신분으로 참여하였고 일본 경찰에 피체되어 고초를 겪었다. 이때부터 그는 민족주의 성향의 문학을 추구하였고, 같은 해 휘문을 졸업하고 고향인 수원군 동탄면 석우리에 내려와 시 '푸른 언덕 가으로', 수필 '청산백운(靑山白雲)' 을 발표하였는데 이것이 그의 최초 작품이다. 주로 박종화 선생과 문학 작품을 같이 하였는데 1920년 상경하여 박종화, 정백 등 휘문 문우들과 유인물 '피는 꽃'과 서광사(曙光社)에서 문예지 '문우(文友)'를 창간하였다. 1922년 이상화, 박종화, 현진건 등과 함께 동인지 '백조'를 창간하고, 창간 권두시 '백조는 흐르는데 별하나 나하나'와 함께 '꿈이면은'을 발표하였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하여 '개벽', '동명(東明)', '삼천리', '매일신보' 등에 시를 비롯하여 소설, 희곡, 수필, 평론을 발표하였다. 1923년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되는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백조' 3호에 발표하였고 단편 '저승길'도 발표하였다.

 

1923년 박승희, 김기진, 김복진과 함께 신극(新劇)운동단체인 토월회의 동인으로 활약하였다. 1927년 2월 박진, 이소연 등과 함께 극단 ‘산유화회(山有花會)’를 조직하고 7월에는 자작 희곡 '향토심(鄕土心)'을 연출하였으나 흥행에는 실패하였다. 대사가 너무 시적인 것이 그 이유였으며 그 여파로 ‘산유화회’는 해산되었으나, 연극에 대한 그의 정열은 멈추지 않았다.

 

1930년 홍해성, 최승일과 함께 신흥극장을 조직하였고 자신이 집필한 희극을 직접 연출하는 일은 계속하였다. 1932년 '불교'에 희곡 '벙어리굿'을 발표하였다. 1941년 일제의 요청으로 희곡 '김옥균전'을 쓰다가 붓을 꺾었다. 개혁의 인물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나 그 뜻을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 얼마 후 해방을 맞이하였지만 그의 몸은 이미 망가져 있었다. 동인지를 만들고 극단을 운영하다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였고, 일제에 무력으로 항거하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원망으로 몸을 망쳐 끝내 1947년 폐결핵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문학 정신은 온전히 수원으로 남아 있다.

 

20여전 수원의 극단 ‘성’에서 고 김성열 예술감독이 노작 홍사용의 일대기를 연극으로 만들었고, 화성시에서 노작 홍사용문학관을 만들어 노작의 뜻을 기리고 있다. 한 사람의 글이 민족에게 힘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이가 바로 홍사용이었다.

 

홍사용 선생을 기리기 위한 노작홍사용기념사업회가 만들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노작 선생을 기리는 일이 단순히 그의 문학만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그의 지조있는 삶을 함께 현양하여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배움을 있게 하기 위함이다.

 

지난 2월에 노작홍사용기념사업회는 석농 홍일선 시인을 이사장으로 선임하였다. 노작의 문학과 삶을 가장 잘 이해하는 인물이 바로 홍일선 시인일 것이다. 홍시인은 엄혹한 독재정권 시기에 우리 민주화를 위해 옹 몸을 내던진 인물이고, 우리 민족문학의 파수꾼 역할을 한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총장, 그리고 민족분단의 아픔을 치유하고 화해와 협력을 하고자 노력한 한국문학평화포럼 창립의 일등공신이자 이사장을 역임한 분이기도 하다. 어쩌면 노작 홍사용의 삶이 곧 석농 홍일선의 삶인지도 모른다.

 

이제 노작홍사용기념사업회는 새로운 이사장 선임을 기반으로 더욱 많은 문학강좌와 인문학 교육을 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문학을 통해 화성시, 오산시, 수원시의 역사성을 공유하는 문화교류의 중심으로 서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수원비행장 이전 문제로 발생한 지역간의 갈등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과제로 새로운 이사장인 홍일선 시인에 대한 기대가 크다.  

 

김준혁(한신대학교 교수, 한국사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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