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현칼럼] 외국어 학습 이전에 모국어로 사고할 수 있는 힘을 먼저 길러라

유미현 | 기사입력 2021/10/21 [17:17]

[유미현칼럼] 외국어 학습 이전에 모국어로 사고할 수 있는 힘을 먼저 길러라

유미현 | 입력 : 2021/10/21 [17:17]

 

‘아이의 뇌는 만3세 무렵 대부분 완성된다’

 

‘외국어는 어릴 때 배워야 원어민처럼 말할 수 있다’

 

언어 학습에 결정적 시기가 있다는 말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이론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19세기 초 프랑스 남부 아베롱에서 11살에 발견되어 아베롱의 야생아로 불린 늑대소년 빅토르,  1920년 인도의 캘커타 늑대굴에서 발견된 카말라, 아말라 자매. 이들은 제대로 된 양육자가 없는 환경에서 자라왔던 탓에 인간 사회로 복귀하여 인간의 생활방식을 학습하였지만 결국 언어는 평생 동안 두서너 마디밖에 습득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례를 들어 언어를 습득하는 데는 ‘결정적인 시기’가 있다는 믿음이 더욱 굳건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20~30년 동안 뇌과학자들은 이것이 ‘신화’에 가까운 엉터리 이론이라고 지적하면서 수정 또는 폐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유독 한국 사회에서는 이것이 절대적인 이론인양 받아들이고 있다. OECD에서 2007년에 국제 공동연구 결과를 정리하여 발표한 ‘뇌의 이해’관련 보고서에서는 ‘3세에 외국어를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은 등은 ‘근거 없는 믿음’이라고 하였다.

 

옥스퍼드대 언어학과 조지은 교수는 아이에게 외국어를 가르치는데 있어서  ‘언제’ 가르치느냐보다 ‘어떻게’ 가르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다. 아이의 언어습득 능력은 2.5~3세 사이에 최고 절정에 도달하는데 ‘사고의 언어’ 즉, 모국어로 제대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전에 여러 언어에 일관성 없이 노출되면 오히려 ‘모국어’를 잃어버리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하였다. 이민이나 기업 주재원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모국어가 제대로 형성되기 전에 외국에 가서 살다온 아이들 중에는 외국어 구사력도 미숙하고, 한국어를 모국어로 습득하지 못해서 한국어에 대한 자신감도 부족한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언어뿐 아니라 사회성 발달, 교우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즉 ‘한 언어로 깊이 있게 사고하는 법’을 익히지 못하면 여러 언어를 배워도 ‘짜깁기’처럼 되어 표현력이 어린 시절에 멈추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영유아 영어전문학원에서 10년 간 강사로 활동했던 한 교사는 "다섯 살인 아이가 2년에 걸쳐 습득한 영어 수준을 초등학교 1학년 아이는 6개월 정도면 다 터득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과도한 영어 조기교육이 아이의 인지, 정서 발달에 심각한 타격을 입힌다고 강조했다. 실제 상당수 전문가들은 부작용이 심각한 경우 아이의 모국어 습득 능력이 크게 떨어지고, 우울증과 불안, 애착장애, 스트레스와 같은 정신병리학적 문제까지 일으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 언어치료센터 원장은 "조기영어교육으로 인해 생기는 언어발달 문제의 가장 흔한 사례가 언어발달 지체다. 모국어가 완성되지도 않은 상황에 영어가 개입해 아이가 사용하는 언어가 뒤섞이고, 발음이 이상해진다"며 "특히 아이들이 커서 사춘기가 올 경우, 심각한 말더듬이가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현상이 2000년대 들어 특히 늘어났다"고 말했다. 

 

중학교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을 했으나 취업이 어려워 한국에서 취업하기로 결정한 어느 청년이 있었다. 한국어와 영어가 모두 유창한 이중언어자(Bilingual)이라는 점이 한국 회사 취업이 유리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예상과는 달리 한국 기업 취업에 실패했다고 한다. 이중언어 능력을 자신의 장점으로 내세우는 구직자들 중 두 가지 언어 모두 확실한 실력을 갖추지 못한 것이 약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한국 기업에 취업한 사람 중 많은 수가 영어를 특별히 잘하지도 못하면서 한국어를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지거나 제대로 된 문서작성도 못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늑대소년의 사례처럼 언어 습득의 결정적 시기가 존재하고  언어 습득을 위해 뇌가 준비를 하는 시기가 6살 전후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6살 이전에 조기 영어교육을 시키기도 하는데, 이는 자칫 모국어 습득을 어렵게 하는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모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아이는 나중에 외국어를 습득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모국어 습득 시기를 놓친 아이는 모국어와 외국어 모두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해외 체류가 아닌 한국 내에서도 외국어 조기교육을 받는 경우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 조지은 교수는 “사고의 언어는 부모와 아이가 언어를 통해 유대 관계를 맺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습득된다. 언어 학습의 문은 절정의 시기인 2.5~3세가 지나더라도 습득의 효율성이 감소하는 것일 뿐 완전히 닫히는 것이 아니며 시기가 조금 늦더라도 ‘사고의 언어’가 안착된 후 아이가 스스로 흥미를 갖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가 영어 배우는 것을 ‘놀이’나 ‘재미’로 느끼면서 영어 책에 호기심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아이에게 영어 단어를 외우게 하고, 영어로 표현하는 것을 가르치기 이전에 우리말 어휘를 익히고, 우리말로 깊이 있게 생각하고, 우리말로 유창하게 표현하는 것을 먼저 익히도록 해야 한다. 외국어 발음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하고 쓰는 ‘내용’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깊이 있는 사고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영어는 발음은 좋지만 내용은 초등영어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음을 반드시 기억하자. 

 

유미현 교수 (아주대 교육대학원 융합인재 및 영재교육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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